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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반야심경의 이해>

블루107 2008. 9. 24. 16:49

<般若心經의 이해>

<목차>

<오온이란?>
<공이라 함은?>
<공의 명상>
<공과 진언>
<색즉시공 공즉시색>
<제법공상 불생불멸>
<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 반야심경--석가여래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불경

. '반야심경'을 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로 옮긴 이는 당나라 현장, 삼장법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마하]--모든 것을 초월하여 거대하다. 생명의 근본, 우주, 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야]--생명의 근원적인 곳에 눈뜨게 하는 지혜, 곧 佛智

         '공'에서 도를 깨우치는 지혜

   * 지식과 지혜의 차이; 지식--자기 바깥 세계로부터 긁어모아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

                         지혜--생명 내부의 움직임 속에서 절로 솟아나는 것

 [바라밀다]--피안에 이르는 상태, 생사윤회로부터 풀려난 상태 즉, 열반에의 길

             현세에 망상의 이 편 기슭에서 깨우침의 강기슭에 도달하려면 '반야'의 지혜가 필요하다. '반야'의 지혜를 얻기에는 '공'의 체험이 필요하다. '공'을 체험하려면 명상의 수행이 필요하다. 피안에 이르는 출발점은 명상의 수행이다. 이에 명상 그 자체를 바라밀다라고도 할 수 있다.

 [심경]--반야심경의 '心'은 대반야바라밀다경 6백권의 정수라는 뜻에서 심장과 같은 경전.

         '심'; 피안에 이르게 되는 지혜의 심장, 반야심경의 끝말을 매듭짓는 진언, 즉 주문.

        '가디 가디 바라가디 바라삼가디 모지 사바하'--반양의 지혜를 낳기 위한 실천, 그것은 명상수행인 것이나 그 명상을 완전한 '공'으로 이끄는 방법이 이 진언 중에 있다.

. 반야심경은 우리 중생들에게 무엇을 호소하고 있을까?

  그것을 꿰뚫어보지 못하면 반야심경의 심장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놓쳐버린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전문(全文)을 바라보면, 먼저 관자재보살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 '공'이라고 규명했다. 그리고 그 뒤로 '공'의 설명이 계속된다. 이 '공'을 앎으로써 사람은 깨우침을 얻게 되고 열반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법하고 있다.

. 불경 속에 잇는 '공'은 어떻고 '무'는 어떻고 하면서 지루하게 계속되는 없다, 없다의 타령은 '반야바라밀다'의 결과에 대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 '공'은 우리들이 진언에 감추어진 지혜로운 부처님의인도로 '반야바라밀다'가 실현된다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 '공'의 명상이 실현되면 영혼은 부처님의 영력에 감응되고, 의식은 나를 떠나서 '공'의 세계에 이른다. 여기서 생명 안에서 잠자는 '반야'가 저절로 눈뜨게 되는 것이다. 즉 진언이 심장이 되어 의식을 '공'으로 보내어 '공'의 실감과 더불어 '반야'가 생겨난다. '반야'로써 '공'이 이해되고 '공'의 이해가 깨달음이 되어 이성이 육성되고 그리고 혼은 마침내 열반으로 이르게 된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 고액]

--옛날 옛적에 성스러운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강물 상류에서 커다란 복숭아가 둥실둥실 떠내려 왔습니다. 관자재보살이 그 영안으로서 심오한 생명의 내부를 투시해보니 그것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근원은 '공(空)'임을 규명하신 것입니다.

.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 관음보살--세상사람들을 살아가는 고통에서 구원코자 하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의 화신이다. 사람들의 고통을 자유자재로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지혜. 33가지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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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五蘊)이란]

--관음보살님이 그 영안으로 살펴보신 바로는 생명의 존재라는 것은 오온(다섯 가지 요소)으로 성립되어 있으며 그 오온도 또한 '공'의 움직임으로 확인하셨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5개의 모임을 '오온'이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 활동의 전부이다. '색'은 물질적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 즉, 이런 경우 '색'이란 육체를 말하고, 수상행식은 거기서 활동하는 정신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색'을 바탕으로 하는 '수상행식'의 오온 또한 쾌락과 고(苦)라는 근원적인 의식에서부터 여러 가지 의식을 형성해 간다. 그 모든 근원을 '공'이라고 한다.

--이 오온의 움직임이 왕성해 질수록 거기에서 생기는 고통도 커져 간다. 물론 거기에는 쾌락이나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서 쾌락에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이것을 구하려다 구하지 못하는 고통이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으로 확실히 이해했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갖는 법도 절로 알게 되는 지혜가 우러 나온다. 그 지혜에 따르면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 일체 세간이 모두 장애와 괴로움을 뛰어 넘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 오온이 모두가 공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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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라 함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 생명 다하도록 이해해야 하고 실감해야 하는 것. 그러한 것이 이 생명 안에 있으며 그것을 부처님은 '공'이라고도 표현하셨다. '법'이라고도 표현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영원한 진리가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가령 우주가 있고 태양이 있다. 그 주이를 지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혹성이 돌고 있다. 각자의 인력이 서로 움직여서 태양게라는 하나의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공'이라는 것이다.

--'공'이라는 것은 깊숙하고 은밀한 것, '색' 뒤에 숨어 있는 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움직임,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 이에 '공'은 '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이라는 것은 존재가 성립되는 이치, 현상을 나타내는 법칙성, 인연으로써 움직이는 힘, 그러므로 '공'은 법이라고도 말한다. '공'에서 모든 것이 나타나 '공'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공' 속에서 모든 것이 변화해 나간다.

--'공'이라 함은 생명현상을 나타내는 신의 의지이다. '신'이란 것은 '공'의 인격적 표현이다. '공'이란 것은 '인(因)에게 작용하는 연(緣)의 힘이다. '공'은 머리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공'은 생명의 실감(實感) 이 외에는 파악할 수가 없다. 생명의 실감을 통하여 비로소 '공'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공'의 실감은 '공'의 명상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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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명상]

--'공'을 실감한다는 것은 '공'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공'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고, 부처와 하나가 되는 일이고, 영혼의 자각으로 이어진다.

--수 많은 수도자도 힘든 노력과 오랜 세월에 걸쳐 겨우 '공'의 실감에 도달할 뿐이다. 그런데 될 것 같지도 않은 '공'의 명상을 부처님의 지혜를 빌려서 의외로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으로 갈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라는 것은 즉 말하자면, '반야심경'의 마지막을 매듭짓는 주문 속에 숨겨 있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가디 가디 바라가디 바라삼가디 모지사바하)'

--그러므로 반야심경에도 쓰여있지! '그러므로 알지어다. 반야바라밀다의 커다란 진언을 각성의 진언. 다시 없고 비할 바 없는 진언은 일체의 고뇌를 제거하고 진실하며 거짓이 없다.'  이 진언에는 공의 명상과 신불(神佛)의 영력이 숨겨져 있다. 이 진언의 영력에 의하여 명상하는 사람의 잡념은 제거되고 정화되어 의식은 공이라는 차원으로 인도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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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진언(眞言)]

--경문(經文)은 인도범문자(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 한문으로 음역 되어서 우리나라를 거쳐서 일본에도 전해진 것인데, 그 경문 중의 어느 부분은 의미를 번역하지 않고 원어의 발음에 가까운 한자를 갖다 붙여 만든 것이 있다. 이러한 것을 '음사어'라고 한다. 그리고 경문의 마지막을 매듭지운 진언도 원어를 음사한 한자로 나열한 것이다.

--가디 가디 바라가디 바라삼가디 모지사바하 (gate gare paragate parasamgate bodni svaha)-->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특히 진언은 신불의 영력이 숨겨진 말이므로 의미 이상으로 말의 운(韻)을 소중하게 여기므로 음역으로만 둔 것이다. 그런대도 원어의 산스크리트어를 억지로 한자로 바꾼다면 자연히 발음도 달라진다. 같은 한자를 읽어도 중국어 발음과 우리 한국 발음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진언은 왜 그 의미보다 말의 운을 소중하게 여깁니까? 즉 진언은 그 말의 음률 가운데서 신비의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말의 음률 중에 성령의 지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말의 음률을 바꾸어 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진언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다만 뜻을 전하는 보통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진언의 대표적인 것으로 '옴(aum, 唵)' 이라는 성음(聖音)이 있다.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진동음으로서 옛날부터 요가 수행자들은 이 성음의 음률을 이용하여 깊은 명상을 실현했다. '옴'은 한자로서는 '唵'으로 쓴다. 그것을 글자대로 읽으면 '암'이 된다. '옴'과 '암'은 그 음률이 전혀 다르다. '옴' 중에 '암'의 관념이 있어도 성음 음률은 들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반야심경'의 진언도 본래의 음률에서 떠나 버리면 거기에 숨겨진 신비의 힘도 움직이지 않고 부처님의 지헤도 없어진다.

--바른 진언에는 신비의 영력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성령의 지혜가 살아 있다. 그것의 도움으로 '공'의 명상이 실현될 수 있다. 진언과 일체가 되어 명상에 들어가면 진언에 숨겨져 있는 세 가지 비밀을 알아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비밀을 이용하므로써 '공'에 이르는 명상이 실현된다.

--(진언의 의미) ; 건너가자 건너가자  넘어서 건너가자 모든 것을 넘어서 건너가자  거기에 '공'의 깨달음이 있다.

--우선 첫째로, 진언의 의미가 그대로 명상의 의식을 옮기는 표현이기도 하다. 즉 진언의 의미에 명상의식의 전환방법이 숨겨 있다. 둘째로, 진언의 음률이 그대로 명상에 따른 호흡의 표현이다. 이 호흡법에 의하여 의식은 '공'의 차원으로 인도되어 간다. 그리고 셋째로, 명상의 의식과 호흡이 완전일치될 때 거기에 신비의 영력이 체현되는 것이다.

--(신비의 영력) ; 우선 호흡에 따라 '차크라'라고 하는 발광체가 생명 속으로 비치기 시작한다. 의식 전체가 차크라를 중심으로 하여 우주로 변화한다. 마침내 어느 때가 되면, 몸안에 이상한 압력이 충만하여 지고 별안간 강렬한 쾌감이 등을 소용돌이쳐 일어난다. 이것은 '쿤다리니'라고 하는 신비의 현상이다. '쿤다리니'는 위로 퍼져 올라가서 머리 끝에 이르러 황금빛이 되어 작열한다. 그 순간 의식 속의 나는 없어지고 거기에 생사를 초월한 생명의 근원이 실감된다. 이것이 곧 '공'의 실감이다. 공의 세계와의 일체화인 것이다.

--이것이 '공'의 명상에 의한 '공'의 체험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알게 된다. '공'의 실감이란 것은 생명의 근원의식. 그것이 바로 영혼의 의식이라는 것을... 이와 같이 '반야심경'의 짧은 진언 속에는 실로 우리들을 '공'의 실감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우리들은 그 부처님의 지헤의 힘에 의하여 '공'의 실감을 자신의 생명 속에 체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공'이야말로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공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영성을 아는 일이며, 영혼을 눈뜨는 일이다. 이에 영혼의 자각이 비롯된다. 이로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정체를 알게 된다. 자기의 어리석음을 알고 고뇌의 근원을 안다.

--그리고 마음에 지배당한 자신의 마음을 조종하는 자신으로 바꾸어 가는 지헤가 솟아난다. 어리석음이 만드는 고뇌에서 자신을 풀어젖히는 지혜가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피안에 이르는 지혜다. 즉 '반야바라밀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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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공의 명상수행과 거기에 눈뜨게 된 반야의 지혜와의 관계를 사리지와 관자재보살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리자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공의 명상 중 부처님의 지혜가 나타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색'이란 현상은 공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공이란 차원은 색의 세게의 근원이다. 여기서 반야심경은 점점 깊이 공과 색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전에 관자재보살과 사리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두 분의 특성에서 이미 거기에 색과 공의 관계를 실체의 있고 없음, 명상과 반야라는 상호적 관계로 펼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불교지식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공의 명상에서 공 세계의 성령의 파동감을 감응하여 공명할 때 비로소 반야심경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반야심경에서는 무엇보다 '공의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을 이해하는 데는 지식이 아니라 명상이라야 됩니다.

-- 반야심경은 명상에서 생겨나는 지혜의 세계이고 지식의 세계와는 머리를 쓰는 각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명상을 뺀 지식의 세계에서는 지혜의 세계가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공의 명상으로 공을 실감한다면 공의 차원에 감성이 자연히 공명하게 된다. 그리고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명상하는 자의 영혼의 세계에 여래의 성령이 말씀하시어 반야심경을 통하여 거기에 있는 깊은 의미와 생명의 실상을 가르쳐 준다.

--샤리푸트라야! 모든 것은 공에 의하여 형성되어 있다. 색과 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색이란 것은 공에 의한 물질적 현상이요.공이란 것은 색으로 나타내는 근원인 것이다. 고락의 감수도 감각에 응하는 상념도 행동에 연결되는 의지나 충동도 거기에서 생겨나는 의식이나 지식도 모두가 공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원소를 세분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질의 궁극적인 모습 즉 원자의 운동이 된다. 그 원자도 분해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는 무한히 서로 얽히는 에너지의 파동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 에너지의 파동을 하나 하나 분해해 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다.색의 한계를 초월한 곳. 거기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무엇인가 있는 것이다. 존재를 초월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존재를 초월한 존재 그것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공'이다. 존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의지! 그 지향성 그것이 바로 공이라 표현되는 것이다.

--공이란, 존재를 초월한 존재! 존재 구성의 理法! 물질적 현상을 나타내는 법칙성, 현상의 본질! 형상의 근원! 인연으로서 움직이는 힘! 색을 있게하는 숨은 에너지! 우주의 법칙! 신의 지향성! 부처님의 생명! 공이란 것은 그러한 것의 전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시도 정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간다. 존재하는 사물의 궁극 모습은 에너지의 파동이다. 파동이란 움직이는 것, 움직이는 물체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모든 것은 변화하는 숙명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존재란 변화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실체가 없으니 번뇌나 고통도 본시는 없는 것이라네!...있으면서 사실은 없으므로 색즉시공! 없는 듯 하면서 현실에 있으니까 공즉시색! 이것을 알게 되면 인생의 고민은 모두 해소된다...생과 사를 초월한 생명현상의 실상이란, 생과 사를 도는 윤회의 정체란, 운명과 숙명의 성립과 그리고 갈마라는 것은...그러한 근원적인 문제가 색즉시공이라는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지혜를 인생 중에서 살려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無明한 고로 스스로가 만드는 불행으로부터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생명의 의식과 정신작용을 말한다. 마음의 전체적인 움직임과 마음의 무대가 되는 육체를 말한다. 그 육체가 색즉시공 곧 공이라는 차원의 나타남이 되어서 모체의 태내에서 생명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생명은 다만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움직임을 받을 뿐이고, 그것이 곧 의식의 受의 상태이다.

--드디어 응아 하고 탄생할 때 고를 맛본다. 새로운 생명은 여러 가지의 고락을 체험한다. 그 고락과 함께 감각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곧 의식의 想의 단계이다. 여기서 생명은 타인과 자기를 구분하는 의식을 갖기 시작하여 자아가 형성되어 간다. 그리하여 자기의 의지로써 행동을 개시하며 반항심도 여기서 생긴다. 곧 이것이 의식의 行의 단계인 것이다.

--행과 더불어 생명은 여러 가지 사실을 알기 시작한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나 선과 악의 구별이나 판단이 싹트기 시작한다. 곧 이것이 識으로의 진전이 된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단계 중에서 각자의 생명의 운명이 만들어 진다. 특히 아의식이 苦로 해서 비뚤어지면 그 행동은 본래의 바른 행동에서 멀어지고 스스로의 고를 증대시켜 자기 주변에 한정없이 고를 발생시켜 가게 된다.그것이 비뚤어진 반항심이 더듬어 나가는 운명이다.

--다시 말해 정신세계의 근원은 공이라는 차원의 여래의 一大心靈이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의 영혼도 공이란 차원에서 하나 하나의 영이 된다. 또한 우리들의 영성은 대심령의 분령으로서 공이란 차원에서 여래의 일대심령과 연결된다. 우리들의 여러 가지 마음은 공이란 차원의 영성의 표현이다. 수도 상도 행도 식도 공이란 차원의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우리들이 현실이라고 느끼는 이 색의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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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샤리푸트라야! 모든 현상은 존재의 법칙성 중에 성립되어 있다. 존재법칙성 그 자체는 相이 없고 생하거나 멸하는 것이 아니다. 더러움과 정결함을 초월하여 있고 더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존재의 법칙성, 곧 공은 영원한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諸法空相'의 문자 중에 숨겨진 가르침이란, 諸法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우리들의 운명이나 숙명은 형편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운명도 숙명도 필연적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법칙성 중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행운도 재난도 필연의 법칙성과 같이 성립되어 있다.

  그 출발점에는 항상 자신의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행동을 재촉하여 그것이 갈마가 되어 '공'의 차원으로서 緣起의 법칙을 둘러싸서 그리고 현상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우리들은 그러한 결과만으로 운명 또한 숙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다.

  (성령으로부터의 메시지)--마음--

  마음은 무엇에 부딪치면 그 나름대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과 결코 하나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 마음에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는 마음은 잔물결과 같은 것 그것과 하나가 되면 잔물결은 힘을 얻어서 점점 큰 파도로 자라난다. 부서지고 흩어지는 큰 파도로 커지고 나면 그때는 자기 힘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된다.

  마음 속에 잔물결이 일어나도 염두에 두지 말고 그것을 단순한 의식현상으로서 바라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마음의 움직이는 모습이 불쾌할 때는 언제라도 중단시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있다. 그 마음의 움직임이 좋은 것이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다.

  마음은 자기자신의 본질이 아니다. 육체로부터 일어나는 의식의 잔물결이다. 마음의 본질은 그 속에 있는 혼이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서 마음에서 멸제할 수 있다.

  마음은 '혼'과는 달리 다룰 수 있다. 이를 알지 못하면 혼은 어느 듯  마음의 지배를 받아 마음의 이즈러짐에 휘말려서 조각 조각 상처를 입게 된다.

  자기 마음은 자기가 아니다. 자기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영적인 혼이다. 그것의 각성이 정신 진화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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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라고 해서 '공'인 차원에서는 어떠한 물질적 현상도 없고, 어떠한 정신작용도 없으며, 모든 감각기관도 그 움직임도 움직임의 대상도 없다. 눈의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아무 것도 없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우리들 생명의 본질은 '공'인 차원의 영혼이다!

  영혼은 개개 생명의 근원이다. '색'의 세계에서 생명현상을 나타내는 '공'인 차원의 생명이다.

  [無無明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亦無老死盡]

  '공' 속에는 무명도 노사도 없다고 말하면서 실은 생사를 초월한 숙명이나 운명과 직접으로 연결되는 '열두인연'이나 '육도윤회' 등 생명의 보이지 않는 실상을 바르게 이해하라!

  열두인연을 둘러싸고 생사의 윤회를 되풀이하는 '무명'의 '영'이 현실로서 나타내는 생명현상이 '육도윤회'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혼에 '무명'의 갈마가 깃들어 있는 한 죽어도 도다시 六界의 어디인가에 생명현상을 나타내어 그것을 현실로서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마음은 그 사람의 靈性의 나타남이다. 각자의 영성이 혼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 마음 속에 그 사람 그 사람의 혼의 영성이 있다. 혼과 영은 '공'인 차원에서의 생명의 안 쪽에서 보면 '혼' 생명의 바깥에서 보면 '영'.

  분노의 마음, 탐욕의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인간의 운명을 불행하게 유도한다. 三惡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그것은 운명만이 아니고 미래의 영원에 이어지는 숙명과도 연결된다. '삼악'의 마음이 도달하는 곳은 '지옥'뿐이다.

  (성령으로부터의 메시지)
  인간 생명의 중심은 영혼
  영혼이 물질세게와 결합된 곳에 육체가 있으며 육체를 토대로 하는 의식이 마음이 되어 움직인다.
  인간의 육체와 함께 마음이 있고 마음 속에 혼이 잠잔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혼의 위치에 따라 갖가지 숙명을 갖고 저마다 운명을 걸어간다.

  소중한 것은 혼의 자각이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혼과 '여래'의 대심령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혼의 진화와 더불어 '여래'의 영으로 성장하여 간다.

[무지역무득이무소득고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무가애고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구경열반 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는 것도 집착도 없게 되어서 깨달음의 길을 가는 자는 이지의 완성과 더불어 마음을 가리는 모든번뇌에서 벗어나서 마침내 열반을 달성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혼의 완전한 진화를 성취한 것이다!

  모든 '보살'이 명상수행에 의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서는 모든 '불타'도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혼'을 완성시켰다. 실로 인간의 행복과 '혼'의 진화는 반야의 '이지의 각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관음보살'의 자비심도 반야의 이지의 각성과 더불어 생기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하고 소중한 이지의 각성!! 그 반야의 이지는 '명상'에 의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의 이지'란 것은 지식과 같이 외부로부터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때문이다. '반야의 이지'라 함은 생명 안에서의 작용 속에서 솟아나오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지'라는 것은 자신이 획득하는 '지식'이 아니고 '진아'의 각성과 더불어 '공'이라는 차원에서 혼에게 주어지는 '지혜'이다. '이지'는 佛의 세계에서 각성된 '혼'에의 선물이다.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시대명주시무상주 시무등등주능제일체고]

  고로 알지어다! 반야바라밀다의 커다란 '진언'응! 깨달음의 진언을! 더없이 비랗 바 없는 진언은 일체의 '고'를 제거한다.

  즉 좋은 방법으로서 반야심경에는 '공'의 명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주문이 준비되어 있지! 반야심경의 '주문'은 깨달음의 이지에서 발생하였으며 여러 사람들을 '공'의 명상에로 묘하게 인도하여 가는 부처님의 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진실불허고설반야바라밀다주]

  그것은 거짓이 없는 완전한 이지에 의하여 설법된 '주문'이다.

  무슨 까닭으로 반야심경의 '주문'이 보통 주문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여기에 계속되는 경문이다. 그러므로 이 '주문'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고 부처님의 지헤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사람의 수준을 넘어선 이지를 사용하여 누구나가 쉽게 '공'의 명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모든 사람들을 각성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부처님의 자비의 정신이 살아있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주문을 올바르게 이용하므로써 '공'의 명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의식을 '공'이라는 차원에 도달시킬 수가 있다! '공'이라는 차원에 이르러서 혼은 여러 신들의 정령을 실감한다! 공이라는 차원에 있어서 '진아'는 부처님의 성령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받는다!

  '주문'이 가지는 신비력에 의하여 '혼의 각성'을 얻을 수 있다. '혼'은 이 세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공'이라는 차원을 향하여 진화의 길로 여행한다. 거기에 생과 사를 초월한 세계, 모든 고뇌에서 벗어난 눈부신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가디가디 바라가디 바라삼가디 모지사바하

  건너가자 건너가자 피안으로 건너가자 진실로 피안으로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라.

  이 '주문'이야말로 반야심경의 심장이다. 이 '주문'에 의하여 '혼'은 '공'이라는 차원으로 각성한다! 거기에 있어서 '혼'은 부처님의 성령과의 연결을 얻고서 각성되는 것이다!

  그 각성과 더불어 반야의 이지가 육성되고 '공'의 의미를 자연히 이해하고 생명근원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고 그와 더불어 자비의 정신이 확립되어 간다. 즉 '관자재보살'이 생명의 작용 속에 나타난다!

  '반야심경'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명상을 하라! 그것을 위한 '주문'을 외워라! 그렇게 하면 '색'과 연결된 '공'이라는 차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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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789lhj
글쓴이 : 삼장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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