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용강동 원지 혹은 제2 안압지

블루107 2010. 7. 16. 20:11

 

아직 발굴이 완전히 되지 않아서 전체적인 형태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발굴된 부분은

분황사 연못과 차이가 거의 없는 것 같더군요. 곡선연못에 안압지식 섬 두 곳.

 

용강동 원지 유적 평면도

 

분황사 연지 유적 평면도

이 정원의 연못은 굴곡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좀 더 방지에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이렇게 차근차근

방지를 향해서 간 것일까요?

보기에 용강동연못은 깊이가 깊지 않아서 분황사의 입체적인 느낌은 약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척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용강동원지는 뭐랄까요. 좀 소극적이라고 할까요? 왠지 의욕없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다른 것을 베낀 것 자체가 의욕없음을 나타내겠죠. 네 용강동원지는 매너리즘양식입니다. 용강동원지는 분황사연못을 답습했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쇠퇴한 것이죠.

 

앞으로 신라시대 정원유적이 발굴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좋은 정원유적은 출현하지 않을 것 같군요. 이미 매너리즘양식에 빠진 형태와 사회적인 문제때문에 좋은 정원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통일이후 신라는 하대로 접어들면서 끔찍한 혼란에 빠집니다. 사회가 혼란하면 문화는 하강하면서 지금까지 이룩했던 정제된 양식은 무너지는 게 거의 순리죠. 석굴암같은 위대한 문화재는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통일전후신라사회가 조형예술의 전성기였습니다. 안압지는 그 시대에 출현한 뛰어난 정원양식입니다.

신라시대의 고대의 자연(바다풍경)을 모사한 정원양식은 신라문화의 전성기인 안압지로 완성이 되고 그 완성이 곧 끝입니다. 안압지의 그 아름다운 가산과 섬등 그 양식이 계속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양식이 발전했다면 안압지만큼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양식을 포기하다니. 그건 한국정원사에서 큰 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길. 천년도 더후에 몇몇 인물들이 안압지이후에 당연히 있어야할 

양식실험을 실천합니다.

 

 

왜 용강동연못을 발굴을 안한답니까. 저는 신라시대 무덤이나 절터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그런 유적에 관심이 없는 건 어떤 아름다움도 찾을 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주는 저에게 지루한 대상입니다. 비슷비슷한 양식의 무덤과 절터를 빼면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박물관, 석굴암, 안압지만 보면 경주는 끝입니다. 정원은 한 사회가 꿈꾸는

 이상적인 풍경입니다. 신라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냥 묻어놓다니 제정신일까요?

용강동원지같은 유적을 안압지처럼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 안압지만큼 인기있는 유적이 될텐데 아쉽습니다.

경주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주지 않는 것을 한탄할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유적이나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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