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청평 문수원

블루107 2010. 8. 7. 22:29

문수원(1089)

 

 

고려시대의 정원은 개성에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 발굴이 될까요? 역사서에는 물론 정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괴석을 모아 가산을 쌓고 정자를 세웠다고 합니다. 기록으로 보면 신라시대의 가산과 고려시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신라시대는 괴석보다는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돌을 흙으로 만든 가산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괴석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니 주위의 평범한 돌 대신 기암괴석에 관심을 기울인 모양입니다. 아마도 중국 쪽의 영향일수도 있겠죠. 송나라 때 기이한 모양의 태호석이 아주 사랑을 받았다죠.

 

고려시대의 정원으로 방지와 돌을 쌓은 유적으로 문수원이 남아있습니다.

문수원 연못 안에는 자연스러운 돌이 세 개 섬처럼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문수원 곳곳에 돌을 쌓아서 만든 유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산이겠죠. 이런 문수원의 유적은 인공적인 방지요소와 자연적인 가산요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식은 아직 견고하지 못하다고 할까요? 하나의 형식을 이룩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네요.

 

 

문수원의 방형연못을 보면 올 것이 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앞으로 천년동안 이 방지가 정원양식을 뒤덮습니다. 천년, 너무 긴 시간이 아닙니까? 도대체 뭐랍니까 중세 암흑사회도 아니고.

이 방지는 익숙한 연못의 양식입니다. 백제의 정림사, 고구려의 안학궁에서도 이미 방지가 보입니다. 하지만 방지는 정원양식으로 사랑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려시대부터 이규보의 시에서 그리고 혜음원지의 정원유적에서 방지가 보입니다. 기록과 유적으로 볼때 고려도 조선만큼 방지가 정원양식을 지배한 것 같습니다.

이 딱딱하기 이를 데 없고 인공적이기 이를 데 없는 양식이 왜 고려시대부터 천년이나 한반도를 지배했을까요?

저는 이런 현상이 의 규모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지금까지 방지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원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방지는 대부분 규모가 작습니다. 그런 규모가 작은 정원에 안압지처럼 곡선이 많은 형태를 도입할 수가 없죠. 또 한다면 조잡해보일 것입니다. 더구나 입체적인 가산은 이미 사라진 상황입니다. 오로지 연못의 형태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상황입니다. 네 방지는 작은 연못정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 방지의 유일한 장점인 단정해보인 다는 점에서 또한 필연적인 선택이었겠죠.

일본의 곡선적인 연못정원과 중국소주의 정원이 규모가 클수록 복잡한 연못구조를 가진 이유는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중국의 작은 정원을 보세요. 작은 정원은 대부분 단순한 구조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작은 규모의 정원에는 아예 연못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연못이 어떻게 만들어져야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에 왜 방지가 설치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치가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방지가 정원의 구성미를 돋보이게 하는 형태였다면 영리한 그들이 그냥둘 리가 없었겠죠. 그렇습니다. 방지는 그들이 원하는 양식은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피한 양식이죠. 그런 면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서 미감이 앞선 민족같습니다.

 

 

고려나 조선처럼 연못을 전한 사각형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약간의 변형만 있어도 아름다운 형태가 만들어지죠. 혹은 중국처럼 연못 가장자리에 멋진 돌만 몇 개 놓아도 한층 아름다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양식을 한국인은 거부했습니다. 결과는 심심합니다. 저는 방지원도를 보면서 강박관념까지 느껴집니다. 저렇게 억압된 것인가?

이런 방지원도는 면 이 의식의 심층에는 조선시대의 도덕적인 엄격함을 요구하는 사상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수원의 성취를 본다면 글쎄요. 뭔가 흐릿합니다. 솔직히 인상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신라시대의 아름다움을 넘어섰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개성의 본격적인 정원을 보아야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화려하고 정제된 귀족예술이 꽃을 피운 고려시대라서 정원도 아름다울 거라고 확신합니다만.

문수원정원은 새로운 형식의 시작이 아니라 안압지로 시작된 신라시대의 정원의 퇴락한 양식에 가깝습니다. 사라져가는 잔영이 이 정원의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억도 할수 없는 오래전 저는 홀로 시외버스를 타고 춘천에 도착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소양강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청평사에 도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문수원연못과 돌을 쌓은 유적을 보았지만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려오다가 먹은 막국수가 떠오르는군요. 나이드셨지만 아직 카랑카랑하게 손님을 부르던 할머니가 만드신 막국수는 정말 맛있었죠. 열정이 넘치던 시대의 추억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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