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소쇄원

블루107 2010. 8. 14. 12:39

사진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꼭 가서 보아야할 정원입니다.

 

 

소쇄원(1540)

1540년 소쇄원은 조선시대 정원양식을 완성했습니다.

154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백년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소쇄원, 윤고산별장, 서석지, 이들은 성격도 다 다릅니다.

 

소쇄원으로 가는 죽림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정원이 보였을 때 저는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 정원은 과연 상상도 못한 뛰어난 구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정원을 봤지만 탄성을 내지른 정원은 소쇄원을 제외하면 아직 없었습니다.

 

작정자인 양산보는 멘토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한 인물입니다. 당연히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스승을 잃고 꿈을 잃은 사람의 심정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에게는 도피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 절실했겠죠. 그래서 이상향을 현실에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벗들과 교류하면서 한세상을 보냅니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정원은 한국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세상에는 개인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인물도 있습니다. 그가 바로 양산보입니다. 사실 그의 스승보다는 양산보가 더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소쇄원을 보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소쇄원은 어느날 홀연히 등장한 정원입니다. 이전에 소쇄원과 비슷한 형태의 정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개성쪽의 고려시대 정원을 보아야겠지만 지금까지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서 소쇄원은 아버지가 없는 아들 같습니다. 외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명나라시대와 일본의 동시대정원은 소쇄원과는 양식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뛰어난 정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양산보는 무엇에 근거해서 정원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꽤 오랫동안 소쇄원에 영향을 주었을 무엇을 찾았습니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소쇄원은 삼단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정원에 들어가자마자 만나는 근경의 대봉대와 계류를 건너서야 도달할 수 있는 중경의 광풍각, 그리고 그 위쪽의 위험해보일 수도 있을 정도의 높이에 있는 원경의 제월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구성이 눈에 익지 않습니까? 15세기와 16세기의 산수화들이 대부분 이런 근경, 중경, 원경의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산수화에는 근경과 중경사이에 물이나 강으로 분리되어있습니다. 양산보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풍경인 산수화를 현실생활에 구현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못한 것을 말이죠.  

 

조선전기 소상팔경도 필자미상

 

소쇄원은 한국적인 정원양식에 가장 알맞은 형태입니다. 한국은 산악이 70퍼센트나 된다고 하죠. 이런 굴곡 많은 곳에 어울리는 양식이 바로 지형의 고저를 이용한 양식입니다. 어느 시골을 가더라도 산이 없는 곳이 없고 계곡이 없는 곳이 없죠.

하지만 이런 지형을 이용한 정원은 양산보의 이전에는 시도가 없었습니다. 고구려의 안학궁정원과 신라의 안압지 모두 평지형정원입니다. 고려시대의 문수원은 산속에 만들어졌지만 그 구성은 산의 굴곡을 이용하지 않는 면에서는 평지와는 거의 차이가 없는 정원입니다.

양산보는 정원의 한 양식을 창조한 인물입니다. 물론 당대의 산수양식을 정원으로 변형시켰지만 그 변형은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구성이고 거의 이상적인 구성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정원의 천재였습니다.

 

 

소쇄원이후 소쇄원의 영향때문인지 아니면 지형구성상 그런 정원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정원의 한 특징, 지형의 고저를 살린 구성이 하나의 정원양식으로 정착이 된 것은 확실합니다.

창덕궁 비원의 주합루정원과 반도지쪽의 정원, 강진 백운동 별서, 서울의 성락원, 양산의 우규동별서가 바로 소쇄원의 후예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정원은 자연을 모방하는 정원에서 시작해서 양산보의 자연과 인공을 결합하는 별서양식정원, 연당정원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정원중에서 가장 뛰어난 정원은 바로 양산보가 창안한 삼단구성의 별서양식의 정원입니다. 자연모방정원은 일본을 따라갈 수가 없고 연당정원은 앞에서 보았다시피 뛰어난 정원의 가능성이 별로 없는 정원양식입니다.

양산보의 정원은 한국의 지형에 가장 알맞은 형식입니다. 그러나 이 정원은 그리 호락호락한 정원은 아닙니다. 강진의 백운동별서는 뛰어난 정원이 될 소지가 있었지만 너무도 인공적인 구성으로 자연의 요소를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구성에 실패했고, 우규동별서는 너무 자연에만 의존해서 인공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성락원은 소쇄원에 버금가는 완성도를 보입니다. 이 정원은 다시 다루겠지만 삼단구성 정원의 핵심이 무언지 잘 보여주는 정원입니다.

 

성락원은 우선 인공적인 요소인 건축물이 잘 살아있습니다. 근경의 집과 중경의 본재누각, 원경의 송석정. 삼단구성의 핵심이 되는 요소는 바로 건축입니다. 건축으로 삼단구성을 강조하죠. 이 건축적인 요소는 우규동별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규동별서는 자연자체처럼 보입니다.

둘째로 자연적인 구성입니다. 원경에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 아래로 계류가 흘러 아래의 자연형 연못에 고인 후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 자연적인 구성을 제대로 못살린 정원이 바로 백운동별서입니다. 이 별서는 삼단구성의 중요한 요소인 근경과 중경사이의 물길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근경에 물길이 있지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직각으로 만들어진 물길은 자연요소를 완전히 인공화시켰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방지원도의 극히 인공적인 요소의 변형아니겠습니까? 만일 이 별서에서 물길을 자연스럽게 정원을 가로지르게하고 곳곳에 정원의 중요한 요소인 자연석으로 장식했더라면 그 완성도는 훨씬 더 높아졌을 것입니다.

 

 

저는 결정했습니다.

만일 정원을 만든다면 소쇄원이 창안한 양식에 따라서 삼단구성으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제가 살펴본 일제시대의 정원에서 사용된 돌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언급하고 싶군요.

소쇄원 옆의 가사문학관의 방지원도. 그곳을 보고 저는 놀라서 자빠질 뻔 했습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정원양식을 창안한 정원 옆에 조선을 대표하는 지루한 양식의 정원이라니요. 도대체 이 정원을 생각한 용자는 누구랍니까? 가장 재미없는 정원을 만들어서 소쇄원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랬을까요?

저라면 저 정원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안압지를 참고해서 정자가 있는 한면만 인공적인 돌쌓기를 그대로 두고 나머지 삼면은 자연스러운 돌쌓기로 바꿀겁니다. 물론 정자만한 크기의 돌부터 자갈까지 다채로운 크기의 돌들을 가장자리를 따라서 늘여놓을 겁니다. 어떻게 놓든 지금의 형태보다는 아름답겠죠.

물론 둥근 섬도 없애버리고 돌의 여유가 있다면 그곳에 두세 개의 자연석을 배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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