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우유부단한 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책을 읽어보고 여러 정황을 살펴보니 고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 인물이더군요.
상류층이 개혁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만하기 때문이죠. 내가 가진 것을 내 놓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조선말기 상류층의 일부는 개화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입니다. 또 하류층에서는 동학이 있었죠.
그런데 상하류층이 막상 개화를 하려하자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고종을 위시한 황후 민씨와 척족이었죠. (민비를 영웅시하는데 참 웃음만 나는군요.)특히 고종은 암군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이 개화로 방향을 향하기만하면 싹을 사정없이 꺾습니다.
갑신정변이 그랬고
동학이 그렇고
갑오경장이 그랬습니다.
그럼 고종은 왜 이 세력을 저지했을까요. 바로 권력 때문입니다. 갑신정변이하의 세력이 주장한건 일본의 유신을 참고해서 비슷한 근대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 세력은 거의 흡사하게 근대적인 국가성립을 위해 왕권의 제한을 주장했습니다. (임금직속기구인 궁내부의 권한축소같은) 그때 세상은 왕정제에서 벗어나 대통령제나 입헌군주제로 변하고 있었죠. 그리고 왕권을 제한하지 않으면 개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고종은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관직장사까지 했습니다. 그 정도였습니다.
또 고종은 독립협회도 탄압했는데 이유는 국민참정권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왕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죠. 참정권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볼때 그는 결코 우매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시대 고종처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아무튼 고종은 자신의 기득권을 전혀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순조처럼 아무것도 안했다면 어쩌면 나라가 개화를 향해서 가는데 순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을 막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내렸죠. 그는 개화세력에 처음에는 동조하는 척 하면서 나중에 뒷통수를 쳐서 세력을 처단하기로 유명했죠. 이런 그를 보고 의중을 잘 모르겠다고 신하들이 말하는데 고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개화를 거부했던 겁니다. 그는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이 정변에 실패한 후 해외도피중인 상황에서 자객을 파견해서 암살하죠. 고종이 김옥균에게 자객을 파견한건 본보기로 추정됩니다. 개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다시는 정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만일 정변을 다시 일으킨다면 세상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이겠다는 엄포였습니다. 이후 아무도 나서지 않죠. 아무튼 우리는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일행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개화를 위한 시간이 촉박한 마당에 개화를 주장하는 신하들이 죽어가는 혼란이 가중되니 결국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개화의 마지막 기회는 갑신정변(1884)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학은 근대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있지 않아서 성공했다해도 근대국가로의 길은 험난했을 겁니다. 갑오경장(1894)은 일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보다 못해서 실행한거죠. 그리고 갑오경장시대에는 재빨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있었기에 성공했다해도 근대국가로의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갑신정변의 시기를 볼때 김옥균은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변을 일으켜야할 마지막 기회를 포착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더 늦으면 개화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동감합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죠.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은 십년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조선은 그 시간에 한 것이 없습니다. 십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대학교육을 두번이나 받고도 대학원을 끝낼 수 있는 시간이죠. 이 시간은 사람을 전근대인에서 근대인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교육으로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교육보다 더 효과적인 건 없죠. 조선이 주자학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겠죠. 그리고 이 시간은 비슷한 선상에서 출발한 (물론 조선이 많이 처져있었지만)일본이 근대화에 매진해 성공한 시간들이기도 했죠.
조선은 정말 중요한 시간에 철저한 수구주의자이면서 나라의 미래는 거의 관심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데만 급급했던 최악의 군주를 배출했던 것이죠. 조선의 멸망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만 급급한 왕의 탐욕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 그리고 왕정제 폐혜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싶네요.
을사오적의 대표인 이완용이 독립협회에 가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도 개화를 지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탈퇴합니다. 고종이 참정권을 주장하는 독립협회를 가만두지 않을 걸 알고 있었던 것이죠. 영리한 그는 고종이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라를 판 이완용이 비난받는 것은 당연한데, 사실 그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세력을 그가 처단한 건 아니거든요. 그는 다만 싸인만 했습니다, 이완용보다 더 비난 받아야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리만치 개화를 막은 고종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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