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역사의 아침

블루107 2013. 4. 13. 00:27

 

임용한 선생님의 새책이 나왔군요.

 

이 책은 박제가의 평전에 가깝습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죽음의 때까지 더듬어가니까.

그런데 책을 읽고 난후 다른 인문서적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제가라는 인간과 그가 살았던 그 시대를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입니다.

이건 아마도 저자가 박제가가 살던 시대를 그 누구보다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하면서 보여준 것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마치 영화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그런 영화를 본 것 같더군요.

이런 감동을 받은 적이 오래되어서 책을 읽은 후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참 이 작가는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쓴다는 것이죠.

그리고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이해의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사회, 정치, 풍속 등등.

모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의 다른 책, 전쟁과 역사처럼 한 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짚어내는

깊이있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책 내용 중에 조선이 가난 한 이유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상사회는 농본사회다. 농본사회의 적은 상

공업이다. 심하게 말해서 상공업을 아예 없애버리면 속이 시원하겠

지만, 아예 없앨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상공업도 농업과 마찬가지

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184

.............

왜 그럴까? 상공업은 농업보다 쉽게 돈을 벌게 해준다. 상인이 돈을 벌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으로 사회가 분화한다. 이건 사회정의에 어긋난다.

백성은 최대한 평등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한다. 주변 사람이 모두

가난하고 평등해야 의욕과 욕망도 없고, 고분고분하게 말도 잘 듣는다.

인간은 돈을 벌면 그다음 권력을 추구한다. 자식을 공부시켜 지방 유지로

만들거나 과거에 도전해서 쓸데없이 경쟁률을 높이고 사회를 험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회가 편안하고 안정적이 되려면 극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9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평등하게가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조선의 경제사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이다. -185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상공업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주 정의롭고 설득력 있는 명분을 찾아냈다.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물자를

생산하는 농부는 100원을 버는데, 그 물품을 받아 여기저기 옮겨주는

교활한 인간은 열 배, 백 배의 수익을 올린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

이 교활한 논리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눈으로 봐서는 맞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얼치기 지식인뿐 아니라 양심적인 지식인, 학자들도

이 논리에 넘어갔다. 그만큼 현상적 진리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박제가가 주장하듯이 외국의 다른 세계를 보아야 한다. 아무

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기 세계에 갇혀 있으면 현상과 자기 경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 -186

 

책에는 조선이 상공업을 천시한 이유가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보다 더

뛰어난 통찰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