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지(1640)
어느 해 무작정 떠난 경북북부여행의 종착지 중의 하나가 바로 서석지였습니다. 여름이었네요. 너무도 더운 여름날 연당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옆 국도를 따라서 계곡같은 시내가 흐르는 그곳은 정말 오지 느낌이 나더군요. 산들도 높진 않지만 우리가 흔히 보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었습니다. 돌이 성분이 달라서인지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마을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정원입니다. 정원은 작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출입문은 곧바로 연못을 보여주지 않고 일단 주건물인 경정을 바라보도록 한번 꺾여있습니다. 이 세심함이란. 만일 문이 꺾여있지 않다면 주인의 숙소인 주일재가 바로 보여서 좀 어색했겠죠.
이 연못의 주인이 되는 건물은 경정입니다. 경정은 누마루가 주 목적인 건물입니다. 누마루가장자리 바로 밑에 연꽃이 피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압지의 건물과 연못의 관계와 같습니다. 또한 안압지처럼 건물아래 석축과 수면이 만나는 지점에 자연석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건물과 연못을 붙여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국담이 실패한 것중의 하나가 바로 연못과 건축과의 거리였습니다. 너무 느슨해요.
서석지는 기본적으로 연당정원입니다. 조선시대의 흔히 보는 방지형 연못의 규모와 별로 차이나지 않지만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당연히 다른 연당정원과는 독특함이 존재합니다.
연못의 형태는 정사각형이 아닙니다. 주일재 앞 꽃나무를 심어놓은 단이 연못쪽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못은 凹 형태입니다. 이런 것들이 정원을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하고, 완성도를 높이며, 긴장감 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 정원의 핵심은 연못의 가장자리에 무리지어 있는 돌들입니다. 돌은 약간 날이 서 있고 흰색을 띄고 있으며 단단해 보입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자연석 같았습니다.
이 정원은 서석이라고 불리는 이들 돌 때문에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런 돌무리가 아니었다면 다른 정원처럼 밍밍했을 겁니다. 이 정원을 만든 사람은 이 돌 때문에 정원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만큼 돌이 정원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죠.
연못은 돌과 연꽃이 반분하고 있습니다. 연꽃은 사시사철 자연의 조화로운 변화를 보여주면서 언제나 변치않는 돌무리를 돋보이게 하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고 할까요? 이런 구성은 조선시대 어디의 정원에서도 보지 못한 부분이죠. 만일 좁은 연못에 연꽃만이 가득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연못의 깊이도 적당합니다. 연꽃이 가득 자라나도 연못높이는 넘지 않네요. 이것도 세심하게 계획된 것일까요?
손님을 접대하는 경정과는 달리 주일재는 주인개인의 건물입니다. 이 작은 건물은 바로 앞에 꽃나무를 심은 단을 배치해서 대문에서 들어서면서 건너다보이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건물 앞에 나무를 심지 않는 조선시대의 철칙 같은 관념은 이곳에서는 간단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실용을 위해서 기존의 관념은 무시한 것이 되나요? 이런 자세는 좋습니다. 관념에만 매달리다보면 정말 재미없는 방지원도만 만들게 되지요.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관념속에서만 살면 변화가 없죠. 그렇게 된다면 조선처럼 시간의 퇴물이 될 뿐입니다.
주일재 앞의 단은 그 크기만큼 연못안쪽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방지형 연못의 단조로움을 없애면서도 시선을 차단하는 이정도의 구성이라면 정원을 만든 이가 뛰어난 안목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정원은 꼭 필요한 공간만 있고 필요없는 공간은 없습니다. 다닐 수 있는 길을 빼면 정말 남는 공간이 없습니다. 빈 공간인 구석에는 단이 쌓여있고 화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꽉 짜인 정원은 보기 힘들죠. 공간이 긴장을 유지하려면 이래야겠죠.
이 정원을 보고 느끼는 점이 있을 겁니다. 조금만 변화를 줘도 정원은 아름다워진다.
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 조선시대정원은 방지원도를 무한복제하던 시대의 의식에서 벗어난 것들입니다. 조선시대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았죠. 가문이 존재했을 뿐이죠. 그리고 도덕이 존재했죠. 이제 공동체의 삶은 사라지고 개인이 존재하는 시대아닙니까?
개성을 발휘하는 시대라고 해야 할까요? 정원을 만들려고 하시는 분이라면 개성을 발휘하세요.
지금까지 서석지를 세 번 가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정원입니다. 그리고 가장 애정하는 정원입니다. 이상으로 삼는 정원은 소쇄원이지만 정원을 만든다면 이 서석지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사람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비용의 문제가 가장 크겠죠. 소쇄원은 의외로 규모가 큰 정원입니다. 그리고 소쇄원스타일은 의외로 만만찮은 기량을 요구하는 정원입니다.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경정의 마루바닥,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정원을 차지하고 경정에서 멍하니 연꽃을 보던 시간,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질식할 듯이 무덥던 여름과 그 여름이 자신의 계절이라는 듯 싱싱하던 나무와 꽃들, 여름이면 때때로 마음은 그곳으로 갑니다.
서석지는 입장료는 없습니다. 사시사철개방. 소쇄원은 입장료 받습니다.
조선말기의 개인정원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어렵죠. 특히 외암리의 정원을 보려면 꼭 인연이 있어야하겠더군요.